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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우리의 안전

새벽이었다. 뒤척이고 있는데 어디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자던 남편이 “누구야?” 하고 벌떡 일어나서 화장실 창문으로 향했다. 따라가면서 “애들 소리 아니야!” 하며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블라인드를 열고 밖을 보니 벌써 까만 후드를 머리까지 둘러쓴 사내 둘이서 담을 넘어가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려는 남편을 잡았다. 총이라도 가지고 있어 뒤쫓아 가는 우리를 보고 쏘면 큰일이겠다 싶었다. 잠은 벌써 달아난 지 오래였다. 나는 급하게 전화를 가지고 나왔고 남편은 그사이에 어디서 났는지 골프채를 손에 움켜잡고 있었다. 911에 전화하려다가 동네 경찰서에 신고했다.     곧 온다던 경찰관은 삼십 분이 넘어서야 왔다. 그동안 나는 커피를 만들고 남편은 TV를 보면서 진정했다. 역시 낯익은 행동을 해야 마음이 진정되는가 싶었다. 두 명의 경찰관이 와서야 우리는 그쪽으로 향했다. 도둑이 낮은 담을 넘어와서 제일 먼저 거라지 옆문을 열려고 했다고 경찰관이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제야 자세히 차고 문을 살펴보니 무리하게 열려고 한 흔적이 또렷했다. 또한, 경찰관이 손짓한 곳을 보니, 옆문까지 열려고 했는지 손잡이 나무가 찢겨 나갔다. 한인인 듯한 경찰이 크로우바를 쓴 것 같다고 말했다. 등줄기가 오싹했다.   큰 방 화장실 창문에는 크로우바 흔적이 역력했다. ADT 시큐리티 시스템으로 집안 보안 활동을 했어도 도둑을 막지 못했다. 허탈해하는 내가 안 되어 보였는지 경력이 있어 보이는 경관이 그나마 시큐리티 시스템이 있어서 창문을 깨지 않았다고 위로했다. 그리고 왜 911에 바로 전화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도둑들이 이미 도망가서 그리 위급한 일이 아닌 줄 알았다니까 이때가 바로 위급한 상황이라고 되새겨주었다. 도망갔다고 생각을 하게 하고는 방심하고 있을 때 다시 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겠구나 싶었다. 수고롭게도 이른 아침에 찾아 와준 경찰이 고마웠다.   집 밖의 세상에서 우리를 막아주는 것은 겨우 두께 1.5인치의 현관문이다. 게다가 이 도둑들은 현관으로 들어오지 않고 창문이나 옆문으로 오려고 했다. 창문은 얇고 문은 견고하지 못하다. 알람 시스템이 울리든 말든 도둑질을 하려고 맘을 먹으면 손쉽게 할 수 있다. 우리 집은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이번 사건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남편과 상의 끝에 철제 담장을 설치하기로 했다. 남의 물건을 빼앗아 자기의 집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있는 한 보안이 상책이다. 물건이야 다시 사면 되지만 사람이 안 다쳐야 하겠기에 미관상 보기는 좋지 않지만, 철제 담장을 설치하기로 했다. 망우보뢰(亡牛補牢),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었다.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안전 시큐리티 시스템 화장실 창문 동네 경찰서

2023-07-09

[이 아침에] ‘오빤 강남 스타일’을 신고해야 하나?

밤 10시가 넘었다. 별은 총총히 빛나는데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이어 웃음소리와 시끄러운 음악은 계속 들렸다. 이사 온 지 두어 달 된 길 건너 집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파티는 곧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잠을 자려고 했지만 요란한 음악이 귀에 거슬렸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우리 집 길가도 주차된 차로 복잡했다.     ‘그래 이사 와서 처음 하는 파티 같으니까, 9시까지는 참아 주자’하고 속으로 다짐했다. 9시가 넘었다. ‘늦은 밤이니까, 10시면 끝날 거야. 끝나겠지’하며 기다렸지만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화가 나서 911에 전화하려는데 난데없이 한국말이 들렸다. 오빤 강남스타일. 성능 좋은 스피커를 통해 ‘오빤 강남 스타일’ 노래가 잡음 없이 들렸다. 곧 말춤을 추는 검은 선글라스를 낀 싸이가 보이는 듯했다. 911 오퍼레이터가 “어떤 응급상황이죠?”하고 “지금 무슨 노래가 나오냐?”라고 물을 때 싸이의 ‘오빤 강남 스타일’이라고 할 순 없었다.     국가 기밀을 파는 것도 아니고 법에 저촉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헤이. 섹시 레이디. 오빤, 오빤 강남 스타일’을 노래하며 열심히 말춤을 추는, 2012년에 빌보드 핫 100에 2위를 7주씩이나 한 싸이를 고발할 순 없었다. 더욱이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가진 나이기에 참아야 했다.   옆에 있던 남편이 이 경우에는 911이 아니라 차라리 동네 경찰서로 직접 전화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하긴 어차피 동네 경찰이 출동할 것이니, 그것도 일리가 있어 보였다. 동네 경찰서 전화번호를 인터넷에서 찾고 있는데 10시 반이 넘었다.   순간 요즘 라디오에서 자주 나오는 귀에 익은 음악이 들렸다. 이 시간이 아직 초저녁인 딸아이에게 지금 나오는 노래는 누가 부르냐고 물었더니, BTS라고 했다. “뭐라고?”에 이어 “나 원 참” 소리가 절로 나오며 말을 잃었다.     전화 걸던 나의 손이 멈칫하자, 남편이 BTS는 누구냐고 물었다. 난 꽃보다 더 아름다운 아들뻘 되는 아이돌 스타의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 가수들이라고 했다.   남편이 기가 막혀 하는 얼굴을 하면서 옆에 앉았다. BTS, 방탄소년단은 2018년에 LOVE YOURSELF 轉 ‘Tear’를 발매해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위를 했으며, 또한 한국 음악 그룹 최초로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오르기도 한 그룹이다. 한류가 대세는 대세다.   어느덧 11시가 되었다. 911 오퍼레이터에게 ‘BTS’라고 할 수는 없었기에 우린 이 노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아니 기다려야만 했다. 누가 전화했는지, 드디어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경찰이 스피커로 파티가 끝났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음악이 멈추자, 소란하던 세상이 다시 고요해졌다.     미국에서 산 연수가 한국의 두 배가 넘는 나와 아주 어려서 한국을 떠난 1.5세 남편. 우리의 두고 온 조국 대한민국을 향한 애국심을 테스트한 날이었다.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스타일 강남 강남 스타일 동네 경찰서 한국 음악

2022-05-23

[이 아침에] ‘오빤 강남 스타일’을 신고해야 하나?

밤 10시가 넘었다. 별은 총총히 빛나는데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이어 웃음소리와 시끄러운 음악은 계속 들렸다. 이사 온 지 두어 달 된 길 건너 집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파티는 곧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잠을 자려고 했지만 요란한 음악이 귀에 거슬렸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우리 집 길가도 주차된 차로 복잡했다.     ‘그래 이사 와서 처음 하는 파티 같으니까, 9시까지는 참아 주자’하고 속으로 다짐했다. 9시가 넘었다. ‘늦은 밤이니까, 10시면 끝날 거야. 끝나겠지’하며 기다렸지만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화가 나서 911에 전화하려는데 난데없이 한국말이 들렸다. 오빤 강남스타일. 성능 좋은 스피커를 통해 ‘오빤 강남 스타일’ 노래가 잡음 없이 들렸다. 곧 말춤을 추는 검은 선글라스를 낀 싸이가 보이는 듯했다. 911 오퍼레이터가 “어떤 응급상황이죠?”하고 “지금 무슨 노래가 나오냐?”라고 물을 때 싸이의 ‘오빤 강남 스타일’이라고 할 순 없었다.     국가 기밀을 파는 것도 아니고 법에 저촉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헤이. 섹시 레이디. 오빤, 오빤 강남 스타일’을 노래하며 열심히 말춤을 추는, 2012년에 빌보드 핫 100에 2위를 7주씩이나 한 싸이를 고발할 순 없었다. 더욱이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가진 나이기에 참아야 했다.   옆에 있던 남편이 이 경우에는 911이 아니라 차라리 동네 경찰서로 직접 전화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하긴 어차피 동네 경찰이 출동할 것이니, 그것도 일리가 있어 보였다. 동네 경찰서 전화번호를 인터넷에서 찾고 있는데 10시 반이 넘었다.     순간 요즘 라디오에서 자주 나오는 귀에 익은 음악이 들렸다. 이 시간이 아직 초저녁인 딸아이에게 지금 나오는 노래는 누가 부르냐고 물었더니, BTS라고 했다. “뭐라고?”에 이어 “나 원 참” 소리가 절로 나오며 말을 잃었다.     전화 걸던 나의 손이 멈칫하자, 남편이 BTS는 누구냐고 물었다. 난 꽃보다 더 아름다운 아들뻘 되는 아이돌 스타의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 가수들이라고 했다.     남편이 기가 막혀 하는 얼굴을 하면서 옆에 앉았다. BTS, 방탄소년단은 2018년에 LOVE YOURSELF 轉 ‘Tear’를 발매해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위를 했으며, 또한 한국 음악 그룹 최초로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오르기도 한 그룹이다. 한류가 대세는 대세다.   어느덧 11시가 되었다. 911 오퍼레이터에게 ‘BTS’라고 할 수는 없었기에 우린 이 노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아니 기다려야만 했다. 누가 전화했는지, 드디어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경찰이 스피커로 파티가 끝났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음악이 멈추자, 소란하던 세상이 다시 고요해졌다.     미국에서 산 연수가 한국의 두 배가 넘는 나와 아주 어려서 한국을 떠난 1.5세 남편. 우리의 두고 온 조국 대한민국을 향한 애국심을 테스트한 날이었다.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스타일 강남 강남 스타일 동네 경찰서 한국 음악

202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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